"쉬운 전개는 피한다... 낯선 것, 이상한 것을 추구"
Q. <메리 사이코>의 스릴러, <꽃은 미끼야>의 로맨스, <지금 거신 전화는>의 호러 등 작품마다 독특한 장르적 시도를 하고 계시는데, 이런 다양한 장르 창작에 대한 작가님만의 차별화 노하우 및 포인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쉬운 전개나 안전한 길은 피하려고 해요. 그리고 늘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라는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이 가장 먼저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글을 구상할 때는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것, 편안한 것보다는 조금은 이상한 것, 너무 자연스러운 것보다는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을 담아 하나의 주제로 엮으려 합니다. 다만 로맨스 작가로서, 다른 장르적 장치를 더하더라도 로맨스라는 본질을 더욱 살리려 애씁니다.
Q.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만들어나가는 작가님만의 과정이나 방법론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특히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 터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점에 중점을 두시나요?
요즘은 캐릭터에 대한 생각에 특히 몰두하고 있습니다.
차기작을 시작할 때마다 저는 여전히 텅 빈 머리와 백지를 마주합니다. 글을 얼마나 오래 썼든, 완결한 작품이 몇 개가 되든, 새 작품 앞에서는 다시 지망생이 된 기분으로 책상에 앉게 됩니다. 당황하고, 허둥대고, 더듬거리며 겨우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해요.
그래서 사실 ‘매끈한 방법론’이 있다면 저도 오히려 배워보고 싶습니다(웃음). 다만 최근에는 독자들에게 응원받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해 자주 고민합니다. 아무래도 짠한 면, 약점, 결핍 같은 요소들이 그 출발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겨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을 얼마나 울림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 지점을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합니다.
"한국 독자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워... 그게 최고 경쟁력"
Q. <지금 거신 전화는>이 넷플릭스 글로벌 톱10에서 2위까지 오르고, 33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야기가 이렇게 글로벌하게 통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경과 문화를 넘나드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저는 한국 시청자와 독자들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눈높이가 높고, 까다롭고, 또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과제이자, 최고의 경쟁력입니다. 평범한 로맨스나 익숙한 전개만으로는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매번 새로운 시도와 표현 방식을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동시에 한국 시청자들에겐 냉정한 피드백도 많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 보완할 점을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저는 ‘보편적인 이야기’란 단순히 누구나 겪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얼마나 새롭고, 세련되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색다르게 풀어내려는 시도가, 결국 한국 독자들을 만족시키고 아울러 세계에서도 통하는 이야기가 되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아직은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요. 매 작품마다 조금씩 가까워지길 바랄 뿐, 계속 부딪히며 시도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역시 만만치가 않네요.
Q. 원작 웹소설이 웹툰을 거쳐 드라마까지 제작되는 과정을 지켜보시면서 어떤 감정이셨나요? 각각의 매체 변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무엇이며, 원작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설레고 기뻤습니다. 제 이야기가 다른 창작자들의 손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이 무척 기대가 됐거든요.
하지만 원작은 원작일 뿐, 다른 매체로 옮겨질 때는 또 다른 작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많은 스태프와 배우, 제작진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원작자가 참여하기보다는 제작진의 해석과 방향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대본을 받아본 이후에는 그분들의 판단을 존중하며 지켜보았습니다.
다만 웹툰의 경우에는 원작자의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캐릭터 시트(옷 스타일, 머리카락, 눈동자 색, 키와 몸무게, 소품 등)를 전달하고, 초반 1-2화 정도를 미리 받아 검토합니다. 그때 원작자로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의견을 드려야 해요.
예를 들어 <메리 사이코> 웹툰 초안을 봤을 때, 서령이의 눈매가 너무 순하게 표현된 점이나, 프롤로그에서 “사이코패스로 의심받는 아내”라는 핵심 설정이 빠진 부분을 꼭 살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프롤로그가 다시 제작되어 작품의 색깔을 더 분명하게 만든 기억이 납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의 드라마 제작 과정도 저에게는 좋은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원작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입장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드라마에서는 배우 유연석님의 시점과 스릴러적 색채가 보다 강조됐죠. 다른 시선에서 재해석된 작품을 보는 경험은 흥미로웠습니다. 최근작 <너의 윙맨에게>도 판권이 팔려 영상화를 준비 중인데, 어떤 모습으로 변해 나올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웹툰이 원작의 정체성을 최대한 지키는 쪽이었다면, 드라마는 새로운 시각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1점 리뷰도 챙겨봐…건어물이 푸아그라 될 순 없었다"
Q. 연재하시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독자 피드백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독자들의 피드백은 늘 과제와 고민거리를 안겨주거든요(웃음). 한때는 ‘아예 글 스타일을 바꿔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저는 피드백을 깊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주로 연재하는 플랫폼인 리디에서는 5점 평과 1점 평을 모두 확인하는데, 1점 리뷰를 종종 챙겨 봅니다. 거기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만 데이터처럼 모아두고, 다음 작품에서 보완할 수 있는 지점은 최대한 반영하려고 해요.
처음에는 불호 반응이 정말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걸 어떻게 하면 타격 없이, 건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오래 고민하게 됐죠. 그러다 취향과 반응 포인트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와, 담백한 전개를 선호하는 독자가 똑같이 만족할 수는 없다는 걸요. 결국 모든 독자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것 자체가 욕심이고 오만이라는 것도 인정하게 됐어요. 지금은 제 색깔을 지키면서도, 거부감은 줄이는 방법에 대해 궁리 중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건어물이 푸아그라가 될 수는 없었거든요. 그럴 바엔 맛있게 잘 구워진 안주가 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피드백을 읽을 때마다 늘 큰 힘을 얻습니다. 독자님들이 즐겁게 읽어주실 때, 비로소 글을 쓰는 이유를 느립니다. 제게는 그분들이 가장 큰 원동력이자 근간입니다. 불호 의견은 분석의 T로 받아들이고, 만족 의견은 기쁨의 F로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보이스피싱으로 전재산 잃고 나서야 상업적 감각 깨달아"
Q. 작가가 되기까지의 여정과 현재까지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나 깨달음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미 <지금 거신 전화는> 관련 기사에서 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한때 보이스피싱을 당해 전재산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제가 쓰고 싶은, 다소 심오하고 마이너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요.
일제강점기, 호랑이굴로 들어가 짐승이 된 여동생과 거룩하지만 잔혹한 여덟 호랑이 종족, 그리고 일본의 호랑이 토벌대장으로 돌아온 오빠의 이야기였거든요.(조회수는 낮았습니다…)
하지만 생계가 막막해지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독자들이 좋아할 이야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던 것 같아요. 이 업계에 진입하기 위해, 더 깊게는 제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요. 저는 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상업적 감각을 의식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의 저는 정말 절박했습니다. 짓눌릴 듯한 죄책감과 자괴감을 견디게 해준 건 오직 글 뿐이었습니다. 잠시라도 막막한 현실을 잊게 해주었고,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재미있게 읽어준다면 조금 더 버텨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난공블락 로맨스>를 출간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와 독자가 원하는 이야기는 어느 접점에서 꼭 만나게 해야 한다는 걸요. 지금도 여전히, 그 두 가지를 어떻게 붙일지가 중요한 체크리스트가 됐습니다.
Q. 평소 창작할 때의 루틴이나 습관, 그리고 슬럼프가 왔을 때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자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구상하기 전에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TV 프로그램, 예능, 다큐, 영화, 드라마, 유튜브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많이 봅니다. 또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이나 만화를 찾아 읽으며, 재미에 절여지려고 해요. 꼬질꼬질해질 때까지 침대 밖을 잘 벗어나지 않는 편입니다. 이런 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일까요?
그다음에는 다루고 싶은 ‘정서’를 포착합니다. 그리고 그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죠. 아이디어가 태동하면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름대로 정해진 루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 슬럼프는 무기력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번 아웃을 크게 겪어본 적이 있습니다. 최근 <너의 윙맨에게>를 연재할 당시, 밀려드는 외전 일정이 많아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습니다. 3-4 작품을 동시에 연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거든요. 그러다 보니 탈력감이 심해져 “더는 글을 못 쓰겠다”란 생각까지 치달았습니다.
일단은, 연재를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푹 쉬었습니다. 일상을 정상화하는 데 집중하고, 밖으로 나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현실에 발 딛고 선 이야기와 고민들을 들으면, 가뭄이 든 마음속에도 우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느낌이 듭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회복하는 것, 그리고 내가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천천히 다독이다 보면 다시 창작열이 되살아나는 순간이 옵니다. 저 역시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다음 작품을 기획하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본명 걸고 영화·드라마 한 편씩 써보고 싶어"
Q. 앞으로의 창작 계획이나 도전해보고 싶은 새로운 장르, 또는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알리기가 쑥스러워 공개적으로 밝히긴 어렵겠지만, 다른 필명으로 새로운 여성향 장르에도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또한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건어물녀가 아닌 제 본명을 걸고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을 써서 독자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신인의 무기는 '날 것'의 글. 용기 있게 써 내려가라"
Q. 마지막으로 웹소설 작가를 꿈꾸는 청강 학생들과 예비 창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이나 격려의 말씀이 있으신가요?
혹여나 꼰대(!)처럼 들릴까 조심스럽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일, 특히 지망생이나 신인 시절의 글쓰기는 생각보다 훨씬 치사하고 고된 순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작가에게 버릴 경험은 없다”는 말이 제 모토입니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것을 저도 수없이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를 갈고닦을 수 있다면, 어둡고 긴 터널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튼튼한 관절과 체력이 부럽습니다. 신인의 가장 큰 무기는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 아이디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 작가를 넘어설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시기에만 쓸 수 있는 ‘날 것’의 글 덕분일 겁니다. 그러니 가감 없이, 용기 있게 써 내려가십시오. 여러분이 써 내려갈 이야기를, 언젠가 독자로서 만나길 기대합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