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장편 웹툰을 직접 그려온 만화가로서, AI가 창작을 바꾸는 변화를 어떻게 체감하고 계신가요?
아직 웹툰 독자들 사이에선 생성형 AI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많은 것 같아요. '딸깍'이라는 표현으로 비하하기도 하고요. 몇 해 전엔 생성형 AI를 작화에 활용한 걸로 지목되면서 별점 테러와 댓글 공격의 표적이 되어 해명문을 올린 스튜디오도 있었고, 해당 내용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이슈였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 거부감에는 레이어가 꽤 여러 겹이 있습니다. 생성형 AI의 학습 데이터 마이닝 과정에서의 저작권 침해 우려가 있고, 어시스턴트나 스튜디오 계약 작가의 일자리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딸깍'이란 단어에서 읽히듯 작업이라는 노동의 가치가 사라지는 느낌도 함께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쪽에선 만화, 웹툰에 비해 AI 활용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것 같거든요. 이건 그동안 독자들이 웹툰을 회사 단위에서 제작된 콘텐츠 상품이기 전에, '우리 작가님이 고생해서 한땀한땀 만들어온 작품'이란 느낌으로 소비해줬기 때문입니다. 그 개념이 파괴되는 걸 못 견디는 거죠. '왜 우리 독자들은 이렇게 AI에 거부감이 많아'라고 느낄 일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를 작가로서 인정해줬던 거라고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2. '작가로서 인정해줬던 것'이라는 말씀이 울립니다. 홍난지 교수님이 '아저씨를 잘 그리는 방법'을 여쭈셨는데요, AI가 잘 못 그리는 것,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초기에는 'AI는 손가락 갯수를 틀리고 인체를 잘 못 그린다'는 게 조롱거리였던 적도 있지만, 해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지금도 AI가 사람보다 미숙한 것들이 있고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기술적으로 금방 다 해결될 겁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사람들 눈은 금방 익숙해지니까요.
하지만 만화는 '인체'보단 '인물'을 그리는 일이고, 그림만이 아니라 서사와 메시지를 그리는 일입니다. 그동안에도 진정성 있는 자기만의 서사가 있는 사람은 표현력이 좀 부족해도 늘 사랑받아왔잖아요. 이건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이 투영된 이야기,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만화로 그리는 건, 여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AI가 흉내는 낼 수 있을 거고, 사람보다 더 그럴듯하게 잘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이 만들고 그린 이야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거든요.
Q3. '진심을 담은 메시지'라고 하셨는데, 직접 AI를 활용해보신 경험이 있다면 어땠나요?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를 원고에 직접 활용한 적은 없고, 래퍼런스 이미지를 가공하는 데 도움을 받아본 적이 있어요. 참고할 사진의 앵글을 바꾼다든지, 이런 건 AI가 금방 도와주더라고요. 편리하긴 한데, 저에게는 생성형 AI 이미지를 직접 사용하는 건 재미가 없다는 게 제일 큰 한계로 느껴집니다. 그리는 즐거움을 대신하기엔 AI 생성 과정은 너무 기계적이거든요. 제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그 과정이 힘들지만 즐겁기 때문이에요. 과정의 힘듦을 줄이는 대신 그리는 즐거움도 줄어든다면, 저에겐 사실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획과 초벌 취재 단계에서 챗GPT 같은 대화형 AI는 도움이 돼요. 아직 아이디어를 내는 수준은 지극히 낮고 센스도 없어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느낌인데, 제가 떠든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참 잘하더라고요. 신나게 떠든 뒤에 '요약해놔' 하면 빠릿빠릿하게 일합니다.
Q4. '그리는 즐거움'을 강조하셨는데요. '장면설계와연출' 수업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칸 구성, 시선 유도, 연출 같은 영역은 AI가 대체하기 어렵다고 보시나요?
현재로선 대체하기 어렵다고 보지만, 기술은 금방 발전하고 조만간엔 AI가 대체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별로 위협을 느끼진 않는 게, 저는 사람들이 단순히 '기술적으로 훌륭하다'는 이유로 만화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실제로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엔 기술적으로 훌륭하지 않은 작품도 많아요. 퀄리티가 조악하더라도 작가가 무슨 생각을 전하고 싶어서 그렸는지, 어떤 재미를 전하고 싶었는지가 느껴지면 보는 사람도 즐겁죠.
개그를 예로 들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가끔 철지난 농담을 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그걸 듣고 썰렁하다고 타박하는 그 상황까지도 재미있게 받아들여요. 근데 높은 수준의 유머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해도 전 그걸 이용할 것 같진 않거든요.
그런가 하면 굉장히 잘 그린 작품을 보면, 단순히 그 높은 퀄리티 자체에 감탄하기보단 이런 완성도를 만들기 위한 작가의 노력에 감동하게 돼요. 피아니스트의 연주나 스포츠맨의 움직임도 그렇죠. 우린 지금도 기계보다는 한참 느린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고, 아무리 음질 좋은 음원이 인터넷에 있어도 비싼 돈 내고 연주회를 찾잖아요. 아무래도 사람은, 계속해서 사람 냄새가 나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요?
Q5. '사람 냄새'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캐릭터표현실습'에서 학생들이 AI로 캐릭터를 생성해온다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어요?
감점하고, 피드백에서 제외합니다. 과목명처럼 실습을 통해 표현법을 배우는 수업이니까요. AI를 통해 표현하는 법은 이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이 아닙니다. 고민을 거쳐 스타일을 만들고 훈련을 통해 능숙해진다는 건, 굉장히 즐거운 일입니다. 그 즐거움을 배울 기회를 스스로 너무 일찍 놓는 건 교수이기 이전에 선배 작가로서 말리고 싶어요. 수업 밖에서야 AI로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만들든 상관없고요.
Q6. '즐거움을 배울 기회를 놓지 말라'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인간의 온도〉라는 제목이 이 시리즈의 맥락에서도 의미심장한데요. AI 시대에 만화가 지켜야 할 '인간의 온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온도〉는 연쇄살인의 배후를 쫓다가 인류를 지배하려는 AI의 야욕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불완전하지만 서로를 온전히 믿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진 따뜻함을 배우는 어느 사이코패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7년 전에 이미 만화에서 AI를 빌런으로 그렸을 때, 나중에 AI에게 세상이 지배당하면 제가 제일 먼저 처형되어 효수될 거란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혹시 AI님이 이 글도 보고 계시다면, 스토리는 이재익 작가님이 쓰신 거고, 저는 AI님을 잘생기게 그렸단 사실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연극은 최소단위로서 '행위하는 사람(배우)'와 '지켜보는 사람(관객)'이 있으면 성립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만화의 최소단위는 뭘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저에게 그 답은 '작가'와 '독자'인 것 같아요. 만화를 그리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있으면 만화는 존재할 수 있어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그리고자 하는 사람과 읽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만화는 만화로서 존재하겠죠. 작가로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걸 '만화로 그려내고 싶다'는 뜨거움이야말로 만화가로서 간직해야 할 인간의 온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Q7. '만화의 최소단위는 작가와 독자'라고 하셨습니다. EP.01부터 '창작자의길'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이 네 분째인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AI 시대 창작자의 길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시대가 변해도 창작자로 살아가는 법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작업이 보편화되고 만화 원고에 CG 사용이 활발해졌을 때도 결국은 기본기와 안목을 가진 사람이 잘 다뤘습니다.
영화감독 중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 사람도 있고, 직접 촬영하거나 연기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죠. 완성된 작품의 톤을 상상하고, 촬영과 연출의 단계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고, 자신의 색깔을 입혀 완성하는 건 누가 뭐라 해도 감독의 영역이니까요. AI 시대의 만화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AI가 창작의 많은 부분을 도와주더라도 작가의 고유한 영역은 침범받지 않을 거예요.
'어디를 향하냐'는 물음에 답하자면, 만화는 늘 작가에서 출발해서 독자를 향합니다. '너에게 닿기를'이라는 유명한 만화 제목이 있잖아요? 만화가의 마음은, 창작자의 길은 시대가 변해도 늘 똑같습니다. 독자에게 내 만화가 닿기를. |